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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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5월 15일 송건호(宋建鎬)를 대표로 창간하였다. 1975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자유언론수호 투쟁 해직기자들과 1980년 정부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강제해직된 기자
들을 중심으로 창사 기운이 일어나, 1987년 10월 발기인 3,342명을 대표하는 56명으로
창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1988년 2월 2만 7223명이 출연(出捐)한 50억 원의 기금으로
그해 5월, 8면의 창간호 50만 부를 발행함으로써 출범하였다.
'나라의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과 민족의 통일을 목표로 국민에 바탕을 둔 자유롭고 책
임있는 언론정립'을 설립목적으로 하고 '대중적 정론지'임을 자처한 이 신문은 그 후 16
면으로 증면하였다. 종합일간지로는 최초로 한글전용과 가로쓰기를 실시하였다. 그해 9
월 목표액 100억 원의 '한겨레발전기금 국민모금'에 착수, 1989년 5월 119억 원을 모금함
으로써, 시설확장과 사옥신축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주식회사의 형태로 납입자본금은 198억 8000만 원이다. 2004년 현재 일 발행면수는 40면
, 발행부수는 60만 부이며 대표이사는 정태기이다. 주재지역은 인천, 수원, 의정부 등 16개
지역이고 프랑크푸르트, 뉴욕, 도쿄, 오사카에 해외지사가 있다. 사옥은 서울시 마포구 공
덕동에 있다.

3·1운동 후 조선총독부가 이른바 문화통치(文化統治)를 표방하면서 3개의 한국인 발행
민간신문을 허가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동아일보》로서 1920년 4월 1일에 창간하
였다. 창간사에서 조선 민중의 표현기관, 민주주의, 문화주의를 사시(社是)로 내세웠다.
초대 사장에는 박영효(朴泳孝)를 추대했으나, 설립자 김성수(金性洙)가 중심이 되어 19
21년 9월 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송진우(宋鎭宇)·이승훈(李昇薰)·백관수(白寬洙) 등이
8·15광복 전까지 사장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4차례에 걸친 무기정간(無期停刊)을 당하기도 했고, 1920년 11월 중국
지린성[吉林省] 훈춘[琿春]에서 발생한 일본군의 한국동포학살사건을 취재하러 갔던
장덕준(張德俊)이 일본군에 피살당하여 한국 언론사상 최초의 순직자를 내기도 하였다.
1936년 8월 손기정(孫基禎)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에서의 마라톤 우승을 보도하면서 손
기정 선수의 가슴에 그려진 일장기(日章旗)를 말소시킨 사진을 실었다가 정간당한 것도
유명한 사건이었다.
1931년 11월에 월간지 《신동아(新東亞)》, 1933년 1월에 여성지 《신가정(新家庭)》을 창
간하였고, 1930년대에는 문맹타파와 한글보급을 목표로 한 브나로드운동, 이충무공 유적보
존운동 등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1940년 8월 10일 《조선일보(朝鮮日報)》와 함께 일
제의 강요로 폐간되었다. 8·15광복 후인 1945년 12월 1일에 중간(重刊)하였고, 6·25전쟁 때
에는 부산에서 신문을 속간하여 당시로서는 전국 최고부수를 발행하였다. 1953년 8월에 서
울로 복귀, 1950년대에는 이승만(李承晩) 정권의 장기집권을 반대하는 야당지가 되어 1956
년 제3대 대통령선거를 전후해서는 발행부수 30만 부를 돌파하였다.
1963년 4월 25일 동아방송(東亞放送)을 개국하였고, 1965년 4월 《소년동아일보》를 창간하
였다. 또한 1964년 9월 '일장기말소사건'으로 폐간되었던 《신동아》를 복간하였으며, 1967년
11월 《신가정》을 《여성동아(女性東亞)》로 개제(改題)하여 복간하였고, 1967년에 《동아
연감(東亞年鑑)》을 창간하는 등 사세를 확장하였다. 그러나 《동아방송》은 1980년 11월
언론기관통폐합 결의에 따라 한국방송공사(KBS)에 통합되었다.
광복 후에도 1955년 3월 신문의 오식(誤植)이 문제가 되어 1차 정간당하였고, 1974년 12월부터
는 광고해약사태가 일어나 《동아일보》, 동아방송을 비롯하여 발행 잡지 등의 광고까지 7개월
동안이나 무더기로 해약당하여 경영상 심각한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1972년 12월 여의도 사옥 준공, 1978년 6월에는 컬러 윤전기를 설치하였고 10월에는 주간 《스
포츠동아》를 창간하고 이어서 《음악동아》(1984.4), 《과학동아》(1986.1)를 발행하였다. 1992년
10월 서대문구 충정로에 지하 6층 지상 17층, 연건평 1만 225평 규모의 새 사옥을 준공하여 본사를
충정로로 옮겼으며, 1993년 4월 1일 조간신문으로 전환하였다. 1995년에는 시사주간지 《뉴스플러스》
와 신세대여성지 《레츠》를 창간하였다. 1999년에 《뉴스플러스》의 제호를 《주간동아》로 변경하
였다. 2000년에는 국내 첫 신문박물관(Presseum)을 개관하였다.



